1990년 대 초반 작가 '노지마 신지'는 '고교교사', '인간실격', '미성년' 등에서 이지매, 근친상간, 원조교제 등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적랄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름답게 표현하면서 높은 시청률(고교교사:33.0%, 인간실격:28.9%)를 기록하는 한편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이 작품들을 모두 2000년 대 중반에 보면서 새삼스럽게 충격과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08년 2사분기 드라마 '라스트프렌즈'는 그 동안 잊고 있던 위의 드라마들을 생각나게 해주었습니다. 일상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선남선녀 등장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는 내적으로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습니다.
최근 일본 동경을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참기 힘든 답답함이었습니다. 빽빽한 빌딩과 수많은 사람들, 좁은 객실 벽면을 빈틈없이 매우고 있는 광고들 속에서 조용히 신문지를 1/4로 접어서 보고 만화책을 탐독하는 아저씨들의 모습은 한국에 비해 무척 생소했습니다. 한국에서 그 흔한 쩍벌남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선진 의식일 수도 있겠지만 잘 짜인 시스템 안에 묶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과연 내가 이런 환경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면 어떠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심적으로 많은 부분을 억압하면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한국의 시위, 초불집회, 응원 등 이탈과 반항의 기회가 적은 일본에서 사람들은 과연 어떻게 내적 스트레스를 해소할까 궁금해집니다. 이런 해소 방법이 희소하기 때문에 극단치의 모습들이 많이 나타나는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라스트프렌즈'는 두 가지의 큰 줄기가 있습니다. 우선 21세기 일본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심각한 내적 상처와 이를 치유하기 위한 혈연이 아닌 우정, 사랑으로 형성되는 대안적인 가족의 실험을 다루면서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우선 지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고민은 과거의 그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과거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어려움과 성공을 위한 청사진을 그렸던 것에 비해 이 드라마는 삶을 영위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이 노출되지는 않습니다. 각자 자신의 원하는 분야의 일을 하면서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그들은 심각한 내적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 정체성, 섹스 공포증, DV(Domestic Violence) 등 평범하지 않는 등장인물들의 고뇌는 과거와 다른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심리를 다루면서 시청자들에게 신선함과 호기심을 주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시청자들의 입장에서는 선남선녀들의 심각한 내적 상처와 삶의 방황을 지켜보면서 안타까움을 가지지만 한편으로 평범한 자신들의 삶에서 안도감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등장인물들은 평범한 가족의 보살핌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현대 사회 가족의 의미가 축소되면서 현재 젊은이들의 문제는 과거 그들의 부모들 역시 형태는 다르지만 겪었던 것들입니다. 이런 문제가 원활히 부모대에서 해소되지 못 하면서 그 자녀들에게 까지 지속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이혼, 버려짐 등 결손 가정 속에서 사랑에 목마른 이들이 존재하게 됩니다. 수 십 년에 거쳐 현대화되는 사회에서 사회적 병폐는 결국 대를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치유를 위한 새로운 형태의 가족이 제시됩니다. 과거 도모토 츠요시가 주연으로 나왔던 '홈드라마'처럼 혈연이 배제된 우정으로 형성되는 가족이 제시됩니다. 물론 남녀의 관계 속에서 우정과 사랑의 경계선이 무너지면서 이 가족 형태 역시 위험하지만 등장인물들은 이 속에서 자신의 고독과 고뇌를 극복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화려한 캐스팅만으로도 향후 많이 회자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급격한 현대화가 진행된 일본의 사회는 많은 내적 병폐를 내재한 채 지금까지 전진해왔습니다. 더욱이 최근 10년의 경제 침체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과거 세대가 가졌던 꿈도 상실한 듯합니다. 삶의 목표가 사라진 일본 젊은이의 모습은 국내 젊은이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취업을 고민하게 된 효율성이 중시되는 우리 사회에서 젊은이들의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살아가고 있을 입니다. 상처 입은 아름다운 젊은이들이 과연 이후 어떤 치유의 과정을 거쳐갈지 궁금합니다. 물론 예상치 못한 비극과 절망이 숨어있을 수도 있기만 어떤 결말이 오더라도 긴 여운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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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학업 문제로 청소년들이 과중하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병역 문제는 또 어떡합니까? 학교 시설과 시스템은 어떤지요? 억압된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다니요.. ㅎㅎ 일본의 경우는 그래도 학생들 스스로가 장래에 하고 싶은 직업을 택하기 위해 공부만을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잘 짜여진 사회 속에서 자신들만의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일본이야 말로 선진 사회입니다. 한국은 좀 철이 없달까요. 글쓰신 분께선 너무 근시안적으로 문제를 바라보신 것 같다는 소견입니다.
2008/05/28 14:49글쎄요...일본이 저희보다 10년 이상 앞서있는 선진사회라는 측면에 동의합니다. 사회적 시스템이 선진화되어 있는 반면 개인적 활동의 폭을 그렇게 넓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일본 10대의 개성은 도를 넘어서지만 20대 이상 사회에 편입된 이후는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제가 접한 일본은 드라마를 통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왜곡된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확실히 좁은 시각일 수 밖에 없구요. 그래도 일본 드라마에서 드러나는 일본 문제의 양상은 한국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한국의 문제보다 휠씬 적랄하고 심각한 것 같습니다.
2008/05/28 15:53드라마 만을 통해서 이런 글을 쓰시다니 님은 참 예리하신것 같습니다.
2008/05/31 21:13잘 짜여진 시스템안에 묶여 있다는 느낌... 참 공감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은 그걸 모른다는 거지요.
모른다면 묶여 있는게 아니라는 말일 수도 있어요..
우리가 볼때만 묶여 있는 듯 보일 수도..
그런 의미에서 하하님의 잘 짜여진 시스템 안에서 개성을 발휘한다고
평가 할 수도 있겠네요.
일본드라마에서 나타나는 일본문제의 양상은 한국보다 심각하다는 것에는
인정할 수 없네요.
저는 이 드라마를 본 한국인이지만 드라마 안의 모든 인격들을 실제도로 접해보았습니다.
절대 일본에만 있는 적랄하고 심각한 문제는 아닌 듯합니다.
일본드라마에서 다루는 문제의 깊이가 한국드라마보다 좀더 신랄하게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내제된 문제는 유사할 듯 합니다. ^^
2008/06/02 11: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