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순이는 예쁘다’ 가 종영을 되었습니다. 시청률 10%를 넘지 못한 채 마지막 회를 방영했지만 끝까지 이
드라마와 함께 했던 사람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미성년자, 여자, 살인자라는 극단적인 소재를 기반으로 대중과 미디어의 허상을 다룬 전혀 가볍지 않은 드라마였습니다. 아슬아슬한 외줄을 타는 듯한 치밀한 연출로 인순이를 둘러싼 환경에 의한 인순이의 심정 변화를 섬세하게 그려냈습니다. 인순이의 그림자 같은 근수의 고뇌와 대중에 의해 만들어지는 인순이의 허상은 한번 뒤돌아 볼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 근수의 뉘우침의 무게와 용서의 가치
이 드라마는 빛과 어둠 속을 살아가는 2명의 살인자를 교차시키면서 죄의 뉘우침과 용서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하게 이끌어냈습니다. 드라마 내내 ‘근수(이완)’ 라는 인물은 무척 껄끄러운 존재였습니다. 인순이와 인순이 동생의 무한한 애정 속에서 계속 반항적인 모습을 보이는 그를 예뻐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를 옹호하는 인순이에게 답답함을 느낄 뿐이었습니다. 자신의 행위를 숨긴 채 어둠 속에서 괴로움과 함께 살아왔던 근수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그에 대한 연민이 생겼습니다. 비록 죄값을 치렀지만 빛의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순이의 괴로움과 어둠을 속에서 살아온 근수의 괴로움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근수의 심리에는 자신을 동생으로 대하는 누나에 대한 미안함과 한편 자신의 죄값을 치러야 하는 두려움이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었습니다. 그의 딜레마가 결국 그를 일탈자로 만들어 버렸고 그에 대한 연민이 인순이가 근수를 용서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죄의 무겁고 가벼움보다는 죄에 대한 뉘우침에 담긴 진정성의 무게인 것 같습니다. 용서에 있기 앞서 죄에 대한 뉘우침이 선행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지만 우리 사회는 뉘우침 없는 용서가 남발한 것은 아닌가 자문해보고 싶습니다.
- 입소문과 인터넷의 만남
한편 입소문이 인터넷과 만나면서 새로운 Mass Media를 만들어냈습니다. 살인자였던 인순이가 영웅, 스타, 파렴치한 죄인, 불쌍한 피해자 등의 다양한 position을 경험하게 됩니다. 최근 유행하는 UCC와 인터넷을 통해 만들어진 여론의 ‘의외성’이 중요한 화두입니다. 기존 신문이나 방송 같은 전통언론이 형성하던 여론이 일반 인터넷 이용자들에 의해 우연적으로 형성된다는 사실 자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결국 여론형성 능력의 상실은 전통미디어의 영향력이 감소했다는 것을 반증합니다. 언론사와 방송사는 플래폼을 제공하는 포털과 통신업체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하나의 CP로 전락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상우(김민준)느 인순이를 사랑하지만 무의식적인 그녀에 대한 우월감은 인순이의 솔직한 질책으로 비판을 받습니다. 기존까지 여론을 형성하는 선두에 있던 기자들 역시 인터넷에서 예측할 수 없는 여론의 방향에 적지 않게 당황하는 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런 여론의 편승하려는 언론의 얄팍한 상술 역시 비판의 대상입니다. 어쩌면 ‘인순이는 예쁘다’를 통해서 전통미디어의 죽음을 선고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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